지속되는 고액권(5만 원 권) 보유 수요에 발주량 40% 이상 급증
종이·잉크 등 원재료비 상승 여파… 소액 동전은 6년 연속 ‘환수 우위’
신용카드와 모바일 간편결제가 일상화되면서 지갑 속 현금이 계산대에서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마트나 식당에서 현금을 내미는 모습이 낯설어질 만큼 ‘현금 없는 사회’가 도래했지만, 역설적이게도 한국은행이 지난해 새 화폐를 만드는 데 쓴 비용은 1,000억 원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현금 사용은 줄어드는데 화폐 제조 비용은 오히려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3일 한국은행 재무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한은이 한국조폐공사 등을 통해 은행권(지폐)과 주화(동전)를 새로 제조하는 데 들인 ‘화폐제조비’는 총 1,179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4년(890억 원)보다 289억 원(32.5%)이나 급증한 규모이며, 2021년(1,284억 원) 이후 4년 만에 가장 큰 액수다.
💸 ‘현금 없는 시대’에 돈 더 찍은 이유
한국은행이 꼽은 가장 큰 원인은 실제 제작 물량의 확대’다. 한은 관계자는 “시중 유통량과 별개로 매년 비축·교체용으로 제작하는 물량이 있다”며 “2024년에는 약 3억 5,000만 장을 제작했으나, 지난해에는 5억 4,000만 장을 제작해 전년 대비 40% 이상 더 찍어냈다”고 설명했다.
이는 유통 과정에서 낡거나 훼손되어 폐기되는 손상 화폐를 보충하고, 향후 시중 수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비축 물량을 늘렸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시기 급증했던 현금 수요가 고금리 기조를 거치며 2024년 일시적으로 둔화했다가, 지난해 다시 예년 수준의 보충 발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기저효과’가 작용했다.
또한 물가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도 한몫했다. 위조 방지를 위한 특수 보안 장치가 들어가는 지폐의 면섬유(종이) 및 특수 잉크 가격, 주화에 쓰이는 금속 등 직접 재료비와 제조 단가가 인상되면서 전체적인 제조 비용을 끌어올렸다.
🏦 ‘결제용’은 감소, ‘소장·예비용’ 수요는 지속
대중의 일상적인 결제에서 현금은 소외당하고 있지만, ‘자산 보유 목적’으로서의 현금 수요는 여전히 견고하다. 실제로 올해 1분기 기준 시중에 풀려 있는 전체 현금 규모인 ‘화폐발행잔액’은 약 215조 원 수준까지 불어났다.
특히 5만 원 권을 중심으로 “만약을 위해 집에 현금을 보관하겠다”는 경향이 지속되면서 고액권 발행 수요가 꾸니 끊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광복 80주년 기념주화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관련 기념주화 등 대형 행사용 특수 주화 발행이 겹친 점도 비용 상승의 한 요인이 됐다.
🪙 ‘동전’은 정반대… 6년 연속 돌아오는 양이 더 많아
반면 지폐와 달리 동전(주화) 시장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한은이 새로 찍어 시중에 공급하는 양보다 은행 등을 통해 한은으로 다시 돌아오는 환수 물량이 더 많은 ‘순환수(net return)’기조가 확연하다.
지난해에도 동전 환수액이 발행액보다 355억 원 많아 6년 연속 환수 우위가 지속됐다. 특히 10원짜리 동전의 경우, 지난해 5월 한 달간 발행액이 단 1,700만 원(170만 개)에 그치며 1992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상생활에서 10원, 50원짜리 동전의 쓸모가 거의 사라진 결과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디지털 금융의 확산 속에서도 고령층이나 금융 취약계층의 거래 편의성을 보장하고 국가적 비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현금 유통망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며 “이에 따른 화폐 제조 및 현금 관리 비용 지출은 당분간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천매일신문 이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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