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원유 수송의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화물선 피격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이란이 ‘연간 400억 달러(약 55조 원) 규모의 통행료 징수’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최근까지 이어지던 국제사회와의 긴장 완화 기류를 정면으로 뒤집는 조치다. 시장은 이번 도발의 배경과 통행료의 위법성, 그리고 향후 국제 유가에 미칠 장기적 파장에 주목하고 있다.
겉으로는 파국, 속으로는 ‘협상력 극대화’ 노린 벼랑 끝 전술
이번 사태 전까지만 해도 이란과 서방 국가들 사이에는 동결자금 해제와 제재 완화를 둘러싼 막후 협상이 상당 부분 진척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합의 기류’가 무르익던 시점이다.
그럼에도 이란이 갑작스러운 도발을 감행한 배경에는 내부 강경파의 입지 강화와 ‘벼랑 끝 전술’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방이 제시한 제재 완화 조건이 자신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전 세계 에너지 공급망을 인질로 잡아 협상 판도를 유리하게 바꾸려는 의도다. 전문가들은 이를 완전히 판을 깨려는 목적이 아닌, 몸값을 높이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압박으로 해석하고 있다.
‘국제해협’ 통행료 요구… 국제법적 근거 없는 무리수
이란이 주장하는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징수는 국제법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다.
UN 해양법 협약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처럼 공해와 공해를 연결하는 통로는 ‘국제해협’으로 규정된다. 영해를 통과하더라도 타국 선박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통과통항권(Right of Transit Passage)’이 인정되기 때문에 통행료를 부과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이란이 이를 무시하고 독자적인 징수를 선언한 것은 자신이 UN 해양법 협약을 완전히 비준하지 않았다는 점을 악용한 일방적 조치다. 만약 실질적인 강제 징수에 나설 경우 국제적인 군사적·경제적 충돌을 피할 수 없어, 실제로 이행되기보다는 위협용 카드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영원한 고유가’ 오나?… 장기 고착화 가능성 낮은 이유
호르무즈발 리스크로 유가가 단기 급등하면서 ‘고유가 시대의 장기화’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고 있으나, 시장 전문가들은 장기적 고착화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한다.
대체 수송로의 가동: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은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고 홍해나 오만만으로 직접 원유를 수송할 수 있는 육상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어, 위기 시 가동률을 높여 충격을 상쇄할 수 있다.
비(非)OPEC 국가들의 증산 압박: 유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폭등하면 미국의 셰일오일을 비롯한 비OPEC 산유국들이 생산량을 대폭 늘리며 가격 상한선을 형성하게 된다.
에너지 전환의 가속화: 지정학적 위기로 인한 고유가는 역설적으로 전 세계 친환경 에너지 및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을 재촉하는 계기가 된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석유 수요 자체를 감소시켜 유가를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결국 이번 호르무즈 사태는 단기적인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으나, 글로벌 공급망의 다변화와 대체재의 존재로 인해 과거 오일쇼크와 같은 영원한 고유가 침체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인천매일신문 이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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