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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선 투표소, 그들이 지운 것은 민주주의의 무게였다

인천매일신문 이아주 입력 2026.06.25 08:19
멈춰 선 투표소, 그들이 지운 것은 민주주의의 무게였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다. 그리고 그 선거를 지탱하는 가장 신성하고 강력한 무기는 유권자의 손에 쥐어지는 단 한 장의 투표용지다.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그 짧은 순간을 위해 국가와 선거관리위원회는 존재한다. 그러나 지난 지방선거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그 신성한 권리가 너무나도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참담한 현장이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곳도 아닌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대낮에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바닥나 유권자들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현장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선관위의 대응은 안일했고, 그사이 주권자의 소중한 권리는 공중에 붕 떠버렸다.

결국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칼을 빼 들었다. 서울시와 송파구 선관위 관계자 12명을 대상으로 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이 단행됐다. 참고인 신분이라지만 이들의 휴대전화와 주거지까지 강제수사 대상이 된 것은, 이번 사태를 단순한 ‘행정 착오’나 ‘우연한 사고’로 볼 수 없다는 수사당국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선관위가 대면 회의조차 거치지 않은 채, 투표용지 인쇄 물량을 유권자 수의 절반 수준으로 대폭 줄이기로 졸속 결정했다는 정황이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누구의 판단으로 민주주의의 기본 인프라인 투표용지를 아끼겠다는 무모한 발상을 한 것인가. 예산 절감이라는 핑계 뒤에 숨은 선관위의 나태함과 관료주의가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 선거 직후 불거진 투표용지 보관 상자의 무단 폐기 및 분실 의혹, 그리고 고무줄처럼 제각각이었던 투표 연장 시간 조치는 선관위의 신뢰도를 바닥으로 추락시켰다. 선거의 공정성을 생명으로 삼아야 할 조직이, 오히려 선거의 불신을 키우는 진원지가 된 셈이다.

감사원 역시 전면적인 직무감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이번 수사와 감사는 단순히 실무자 몇 명을 문책하는 선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유권자의 소중한 표를 가볍게 여긴 선관위 수뇌부의 방만함과 책임 회피에 대해 뼈를 깎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동안 선관위가 누려온 무소불위의 독립성과 권한 역시 국민의 신뢰를 잃는 순간 한낱 신기루처럼 사라질 뿐이다. 국민의 주권을 소홀히 다룬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합수본의 수사가 선관위의 뒤틀린 행정을 바로잡는 엄중한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