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한 건물이 대한민국이 맞닥뜨린 인구변화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위층 창문에는 색이 바랜 ‘어학원’, ‘학원’, ‘PT’, ‘헬스’ 간판들이 낡은 채로 붙어 있다. 일부는 글씨가 거의 지워져 폐업한 지 오래된 듯하다. 반면 아래층에는 새롭고 선명한 간판들이 눈에 띈다. ‘어르신왕자와 백살공주의 성’, ‘산곡기쁨 주·야간 어르신 복지센터’ 등 노인 대상 서비스 업체들이다.
학령인구가 급감하면서 학원이 문을 닫고, 고령인구가 폭증하면서 노인 복지 사업이 그 자리를 빠르게 채우는 모습이다.
초저출산·초고령화가 바꾸는 거리와 시장
2025년 대한민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 전체 인구의 21%를 초과했다. 합계출산율은 여전히 0.8명대에 머물러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로 인해 초·중·고 학령인구는 매년 큰 폭으로 줄고 있다. 전국적으로 학원 폐업·양도 매물이 쏟아지고 있으며, 특히 중소규모 어학원과 일반 교습학원들의 폐업률이 급증하고 있다. 학생 수가 줄자 수강생 모집이 어려워지고, 학원비 지출도 줄이면서 영세 학원들은 생존 위기에 몰리고 있다.
반면 실버산업(고령친화산업)은 급속도로 성장 중이다. 정부와 업계 전망에 따르면 국내 시니어 시장 규모는 2030년까지 168조 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야간 어르신 복지센터, 재가 돌봄 서비스, 노인 건강·레저 프로그램 등이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학원 자리에서 복지센터로, 대한민국 비즈니스의 구조적 전환
이 사진은 더 이상 ‘학원가’가 아닌 ‘실버거리’로 변해가는 우리 동네의 단면이다.
예전에는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공간이 이제 어르신들의 대화와 웃음으로 채워지고 있다. 학원 원장들은 폐업을 고민하고, 요양보호사와 돌봄 서비스 창업은 꾸준히 증가한다. 부동산 임대 시장에서도 학원 수요는 줄고, 노인 복지 시설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백설공주가 아니라 백살공주 시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승리인 시대가 됐다. 동화 속 공주는 유리구두를 신었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백살공주는 실버스틱을 짚고 복지센터로 향한다. 100세까지 사는 것이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 된 사회다.
인구절벽은 이미 눈앞의 현실이다. 학원가의 쇠퇴를 안타까워만 할 것이 아니라, 고령사회에 맞는 새로운 산업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것이 이제 가장 중요한 과제다.
사진 한 장이 말해주는 것은 단순한 간판 교체가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 전체의 구조적 전환이다. 바랜 학원 간판 아래로 새로 올라가는 밝은 어르신 복지 간판들. 그것이 지금 우리 거리의 모습이고, 곧 다가올 미래다.
인천매일신문 이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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